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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여행-중국

[중국] 아침 해가 뜨는 붉은 도시 '단동'

by 대흐미소다 2006. 11. 12.
아침 해가 뜨는 붉은 도시 '단동'
[중국 여행 2]압록강을 앞에 두고
텍스트만보기    조대흠(daeheumi) 기자   
▲ 단동훼리에서 맞이한 일출
ⓒ2005 조대흠

이른 아침,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고 일출을 보기위해 배 바깥으로 나간다. 바다 저편에서 태양이 푸른바다를 붉게 물들인다. 중국에서 맞는 첫 일출이다. 아니 그 옛날 고구려 땅에서 맞는 첫 일출이다. 올해 4월 독도에 다녀오며 울릉도 도동항에서 보았던 동해 일출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지루할 것만 같았던 12시간이 훨씬 넘는 배 여행은 아침 일출로 새롭게 시작되고 있었다.

▲ 단동훼리에서 바라본 북녘땅
ⓒ2005 조대흠

바다빛이 금빛이다. 바다 뒤로 손에 닿을 듯한 북한 땅 신의주가 보이고 저 멀리 압록강 하구처럼 보이는 곳에선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 합쳐지고 있었다. 어선들도 자주 보이는 걸보니 점점 중국땅에 가까워지고 있나 보다.

▲ 단동항 하선
ⓒ2005 조대흠

단동항에 정박한 배는 하선시간이 되자 사람들로 북적인다. 보따리 무역상들과의 실랑이로 하선시간은 지연되고 그들이 던지는 한마디 "자신들은 달러를 벌기위해 가고 관광객들은 달러를 쓰러간다"는 말이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접안부두에서 통관 사무실까지 왕래하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상인들이 큰 짐들을 수레에 싣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또 다른 삶의 생존현장에 있는 듯하다.

▲ 단동항
ⓒ2005 조대흠

입국절차를 걸쳐 단동항 터미널로 나온다. 터미널에 붉게 날리는 깃발이 여기가 중국땅임을 암시해 준다. 처음 밟은 중국땅인데 왠지 낯익다. 기후도 주변산세도 모두 한국을 닮았다. 중국말을 하는 사람들만 없다면 여기가 중국인지 한국인지 모를 정도다.

중국 라오닝성에 있는 단동시는 중국최대의 국경도시로 1907년에 무역항으로 제정되었고, 1960년대에 인준을 거쳐 1988년 3월에 연해 개방도시가 되었다. 다민족의 도시로 한족, 만족, 몽고족, 회족, 조선족 등 여러 민족이 모여 있으며 단동항은 중국 연해 대외개방의 기본항구로 북한의 신의주와 마주 보고 있다.

옛 이름은 안동이었으나 1965년 단동으로 개명하였으며, 그 뜻은 '아침 해가 뜨는 붉은 도시'라는 뜻이라고 한다.

▲ 단동시내
ⓒ2005 조대흠

단동시내로 들어오니 여기저기 한글 간판이 보이고 한국식당이 보인다. 중국답게 자전거도 자주 보인다.

단동시내에서 점심을 먹는다. 점심 메뉴는 돼지고기, 양고기, 소고기, 오리고기다. 돼지고기는 좀 질긴 편이다. 밥을 먹고 나오는데 조선족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북한돈과 중국지도를 보여주며 한국돈 1000원에 사라고 한다. 북한돈에 흥미가 가서 1000원을 주고 샀다. 이곳에선 한국돈이 통용되고 있었다. 중국지도는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인쇄도 조잡하고 좋이 상태도 나쁜 것 같아 애써 외면했다.

▲ 단동 / 압록강 단교 철교
ⓒ2005 조대흠

처음간 곳은 압록강 단교이다. 이 단교는 1911년 만주진출을 위해 일본의 조선총독부가 만주침공을 염두하고 철도사용을 목적으로 만들었다. 후에 일본은 철로와 도로를 겸한 길이 940m의 현재 압록강단교 좌측의 증조우의교를 또 만들었다. 그러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기 B29 폭격을 받아 신의주쪽은 교각만이 단동 쪽은 철교와 교각이 그대로 남아있는 아치형 철교가 됐다. 미군은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우려하여 북한쪽인 신의주쪽을 폭파했으며 중국은 역사보존을 위해 일부러 없애지 않고 놔두고 있다.

▲ 단동 / 압록강 단교
ⓒ2005 조대흠

압록강 주변에 비가 와서 강물이 많이 불어나 있었다. 다리는 끊어져서 건너갈 수 없지만 그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니 만주벌판을 달렸을 고구려인들도 보이고, 이곳을 무대로 활동했을 독립운동가들의 눈물도 보인다.

ⓒ2005 조대흠

압록강공원 우측에는 관광개발구가 조성되어 고급호텔과 레스토랑, 상가가 있다. 1992년에 단동 경제개발계획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주변에 데이트하는 연인들도 보이고 가족단위의 관광객도 보인다.

2001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중국을 방문했을 때 베이징행 국제열차를 타고 증조우의교를 지나며 단동개발구의 발전상을 보며 놀라워 했다한다.

▲ 단동에서 집안으로 가는 길
ⓒ2005 조대흠

단동에서의 일정을 끝내고 압록강을 우측으로 하며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인 집안으로 이동했다. 요령성 단동시에서 길림성 집안시까지의 거리는 약 240km이나 도로사정이 좋지 못하여 약 6시간 정도를 가야 한다. 지루한 버스여행을 예상했지만, 강 건너 펼쳐지는 북한의 모습과 그럼처럼 펼쳐지는 다채로운 산세와 풍경들이 눈을 즐겁게 했다. 저녁 7시가 넘어서야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인 집안에 도착한다.

▲ 압록에서 바라본 달
ⓒ2005 조대흠

저녁을 먹고 숙소에 짐을 풀고 압록강변으로 갔다. 택시를 탔는데 1인에 2원이었다. 압록강변은 보름달이 떠 있었다. 잠시 달빛에 젖어 노래를 불러봤다.

<제목 : 황성옛터>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가엾다 이 내몸은 그 무엇을 찾으려고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있노라.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루어
구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돌아오는 길, 아쉬움에 술집에 들렸다. 포도맛 맥주와 녹차맥주, 일반맥주 등을 팔고 있었다. 안주로 만두를 시켰는데 엉뚱하게 향채가 나온다.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어쩔 수 없어 그냥 넘어간다. 그런데 나중에 계산할 때 계산서를 보니 향채의 안주 값이 2배로 계산되어 있다. 메뉴에는 8원(우리 돈 약 천원)이라 되어있었는데 계산서에는 16원으로 되어 있다. 따졌더니 양을 2배로 주었단다. 왠지 바가지를 쓴 기분이다. 뭐라 말도 잘 안통하고 화만 내고 돌아왔다.
중국(단동·집안·통화·이도백화·북파 백두산·서파 백두산) 지역 7박8일간의 여행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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